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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뷰(China Review)/習近平정권 Watch

일-중관계 수복은 '머나먼 길(長丁場)', 아베신조(安倍晋三)에 배워 1년후 선전(深圳)에서 악수하는 시나리오 유력, 미-중관계도 변수로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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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해진 일-중관계의 행방은 과연…?


일-중관계 수복은 '나가쵸죠(長丁場 : 머나먼 길)', 아베신조(安倍晋三)에 배워 1년후 선전(深圳)에서 악수하는 시나리오가 유력, 미-중관계도 변수로 떠올라

  

중국・시진핑(習近平) 정권은,「대만 유사시」를 둘러싼 다카이치(高市早苗) 수상에 의한 국회답변에 강하게 반발, 관제 미디어를 총동원하여 다카이치에의 '개인공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맹폭입니다.
  

↑ 다카이치(高市) 수상의 문제의 국회답변(11월 7일)을 전후한 시점에서부터, 일-중관계는 최악의 단계를 달리고 있다. 10월 31일 시진핑(習近平)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라고 다카이치를 압박했고, 다카이치(高市)는 신장・위구르・홍콩에서의 인권탄압을 멈추라고 習에 응수(応酬)했다. 주(駐)오사카 中国총영사는 11월 8일, 문제가 되는 日 정치인들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SNS투고(投稿)를 하여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대만 유사시는 존립위기사태(村立危機事態)로 발전할 수 있다고, 국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다카이치(高市) 수상=2025.11.7.


국가주석인 시진핑(習近平)은 11월 24일 밤, 美 대통령인 트럼프와 전화로 협의했습니다.

중국외무성의 발표에 의하면, 習가 대만문제를 둘러싼 원칙적인 입장을 강조했으며,「미국측은 대만문제에 있어 중국측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말했다」라고, 중국외무성은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習는 다카이치(高市) 답변을 공격하면서 트럼프도 견제

다카이치(高市)의 그 문제의 답변이 나오자, 일본이 대만문제에 개입하지 못 하도록, 중국이 미-일동맹의 한쪽 당사자인 미국까지 견제하려는 노림이 숨어있었다는 게,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기도 했습니다.
세계를 향한 중국 측의 선전(
宣伝)이기도 했지요.

그러나「미국 측이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중국 측의 발표가,  애매함이 담긴 미묘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해야 하겠습니다.
  
한편 트럼프는 미-중 협의후, 교류사이트(SNS)에 의한 발신에서, 대만문제를 둘러싸고 주고받은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10월 30일, 한국・부산에서 習와 회담 후, 중국과의 깨어지기 쉬운 통상관계를 우선하고자 했는지, 목하 험악해진 일-중대립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눈에 띄는 중국비판은 피하려고 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일본시간 11월 25일이 되자 다카이치(高市)에 전화하여 25분 정도 협의했습니다. 이 때 트럼프는 習와의 전화협의의 내용을 다카이치에 설명했습니다.  

다카이치는 트럼프와의 전화협의 후「일-미간의 긴밀한 협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일-중대립, 대만문제를 둘러싼 일-중공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습니다.

다카이치는「회담내용은 외교상의 논의이기 때문에 그 상세한 내용을 밝히는 것은 피하고 싶다」고 말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야말로 일-미-중 간의 밀당과 흥정을 그대로 보여준 '간(勘 : 감)'이 있습니다.
  

↑ 10월 28일, 미 해군의 원자력 항모 「조지 워싱턴」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미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 수상(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神奈川県 横須賀市)

  

↑ 미-중 수뇌회담 후 이야기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2025년 10월 30일, 한국・부산)

  

지금까지 다카이치는 11월 7일의 국회답변의 철회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특정의 사례를 든 것은 「반성점」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후, 관방장관 기하라 미노루(木原稔)도「오해를 초래하는 일이 있다면 금후는 극히 신중히 대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상의 2국가간 관계에서는 정치, 외교 루트를 통해 정황을 진지하게 전달하면, 상대 측의 에스컬레이트는 멈추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측은 지금 일본에 대해 창끝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다카이치 발신(発言)의 전면철회를 요구하고 있어요.
  
남(南)아프리카에서 개최했던 20개국・지역 수뇌회의(G20 서미트)때도, 다카이치와 중국수상인 리창(李強)은 회담을 안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서 간단히 하는 토크도 없었고 접촉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왕이(王毅)는 리창(李強) 수상과는 별개 행동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중국공산당 내에서 리창 수상이 서열 2위이기는 하지만, 크고 중요한 외교방침을 '관장할 입장(仕切る立場)'에는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全)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는 역시 톱의 자리에 있는 習입니다.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사람이 외교를 통괄하는 정치국위원 겸 외상인 왕이(王毅)입니다.
  

↑ G20 서미트의 첫날인 11월 22일, 기념촬영에 임하는 다카이치 수상(왼쪽에서 2번째). 중국의 리창(李強) 수상(오른쪽에서 2번째)과의 접촉은 아예 없었다. (南아프리카・요하네스부르크)

  

외교를 관장하지 않는 리창(李強)이 習의 대리로 국제회의에 나가는 기회가 최근 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왕이(王毅)가 동행하고 있지는 않아요. 왕이는 習 전속의 외교보좌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다카이치 개인을 표적으로 한 중국의 극렬한 조치들이「시(習)・왕이(王毅)」라인에서 터져나온 것이라면, 왕이의 보좌가 없는 南아프리카의 외교의 장에서, 리창(李強)이 별안간 다카이치와 만날 까닭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그 왕이는 같은 시각 중앙아시아 3국을 방문했고, 그 후 11월 23일 중국 미디어의 취재에 답하는 형식으로, 다카이치 답변을 표적으로 한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다카이치는) 넘어서는 안 될 일선(一線)을 넘어 버렸다」「중국은 단호하게 반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왕이의 말은 격렬했습니다.

혼밥의 '대통령' 문재인이 재임 중 중국에 갔을 때, 문재인 몸을 툭툭 치며 '친근한' 제스처를 헤프게 보여줬던  '
각료' 왕이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10월 31일 한국에서의 일-중 수뇌회담(정상회담) 때, 習의 옆에 앉아 있었던 왕이는, 새 일본 수상 다카이치와의 회담을 조정했던 당사자였습니다.

중국측에서부터 본다면, 이 회담 이후, 習의 체면이 구겨지는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왕이(王毅)도 내부에서 책임이 물어질 수 있는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였고, 따라서 중국이 강경자세를 유지하는 일은 예상할 수 있는 전개였습니다.  
  
이 뒤틀린 사태를 완화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는 일정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냉정하고 신중한 대응이 중요할 것이며, 중장기적인 시점(視点)이 요구되어 집니다. 그리고「시(習)・왕이(王毅)」라인과의 의사소통을 꾸준히 모색할 필요성이 있을 것입니다.
  

↑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26년 11월에 중국 광둥성 선전시(広東省 深圳市)에서 APEC수뇌회담을 연다고 발표했다. 왼쪽 후방이 왕이(王毅)・공산당 정치국위원 겸 외상(11월 1일, 한국・경주)

    

그러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게 될까요? 한국・경주에서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수뇌회담의 폐회시, 習는 26년 11월, 중국 광둥성 선전시(広東省 深圳市)에서 APEC수뇌회담을 연다고 선언했습니다.

일본으로서는 그 시기를 내다볼 정도의 시간감각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관제 미디어를 총동원한 말발에 의한 격렬한 '노노시리(罵り : 욕설)'에, 안이하게 반응하지 않는 자세도 중요할 것입니다.
  
참고해야 하는 것은 11년전, 일-중 양국간에 일어났던 일일 것입니다.

그 때 일본 측의 주역은, 지금의 다카이치가 정책계승의 분위기를 살포시 띄우고 있는 바로 그 남자, 즉 당시의 수상 아베신조(安倍晋三)였습니다. 중국 측은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남자 시(習)입니다.

2012년 9월,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에 의한 오키나와현(沖縄県)・센카쿠열도(尖閣諸島)의 국유화를 계기로, 중국에서 격앙된 반일데모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의 아베정권에서는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 참배도 있고 하여, 설상가상으로 일-중관계는 완전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 북경・노구교(盧溝橋)의 항일전쟁 기념관에 전시되었던, 당시의 아베신조(安倍晋三) 수상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악수하는 사진(2015년 7월)

  

그러나 2014년 11월, 끈질긴 아베는 중국을 방문하여 기어코 시(習)와의 회담을 성사시킵니다.

그 때 시(習)의「붓쵸즈라(仏頂面 : 무뚝뚝한 얼굴)」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베이징(北京)APEC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싶은 시(習)의 속내가 있어, 일-중 수뇌회담이 성사됐던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즉 베이징APEC을 세계에 띄우기 위해 習가 연출한 '해빙(雪解け)'의 개시가 일-중관계 복원이었던 셈이지요.

아무튼 이 일-중 수뇌회담(정상회담)은, 노다(野田)정권 시대의 일-중 수뇌회담으로부터 2년반(半)만의 회담이었고, 아베(安倍)에 의한 2013년 12월의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 참배로부터 11개월 후의 회담이 되었습니다.
  
이 일-중회담을 위해 진력(尽力)해 준 숨은 공로자(裏の立役者)는 전(前) 수상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였습니다.

수뇌회담을 목표로 하여 조정을 시작한 것은 2014년 여름. 동년 6월의 은밀한 베이징방문으로 좋은 감촉을 얻은 후쿠다(福田)는, 아베 수상을 만나「관계개선을 위한 호기(好機)를 맞이했다」고 설득했다 합니다.
  
아베의 메시지를 휴대한 후쿠다는 동년 7월 28일, 베이징(北京)을 다시 방문하게 됩니다.

비밀리에 習와 만난 후쿠다는 이렇게 전달했습니다.「위기관리를 하십시다. 우선 수뇌대화가 중요합니다. 미국에 의존할 수만은 없습니다.」

'다마무시이로(玉虫色 : 카멜레온 색깔)'라고도 할 수 있는 일-중「4항목 합의」의 축이 되는 센카쿠열도(尖閣諸島) 등 동중국해의 위기관리 메카니즘을 만드는 일에 중점이 두어졌습니다.
  
「시(習)・왕이(王毅)」라인과의 노련한 파이프역(役)이 난제
    

아베의 성의까지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 시(習)는 고개를 끄덕였고, 「잘 이해하고 있어요」라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1시간의 중요회담에는 중국 측으로부터 당시 국무위원였던 양제츠(
楊潔篪)와 외상인 왕이(王毅), 일본 측으로부터는 국가안전보장국장인 다니우치(谷内正太郎)가 동석했습니다.

양제츠(楊潔篪)・다니우치(谷内)라는 실력파 막강라인에서 수뇌회담을 위한 조정을 하는, 큰 틀의 외교패턴이 자리를 잡기까지 했다는군요.
  
후쿠다(福田)・시(習)회담의 다음날인 7월 29일, 習는 전(前) 최고지도부 멤버인 저우융캉(周永康 Zhou Yongkang)의 적발을 공표했습니다.

실은, 周永康은 2012년 9월의 반일데모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숨은 실력자(裏の人物)였습니다.

저우융캉(周永康)은 공안・경찰, 무장경찰이라고 하는 치안기관, 그리고 검찰・재판소라고 하는 사법전반까지 지배하는 절대권력을 가졌었고, 관제데모에의 인원동원까지를 관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적발로)기반을 다진 習는 후쿠다(福田)와의 회담후, 중국내에서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명확히 지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외교당국이 이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일-중관계에 정통했던 한 소식통은, 이 시점(時点)에서 형태는 어떻지든 간에 APEC에서의 일-중 수뇌회담이 사실상 확정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드론 등 하이테크 기기(機器)로 주목을 받아온 중국 광둥성 선전시(広東省 深圳市)

선전(深圳)APEC의 호스트는 11년전의 베이징(北京)APEC와 똑같이 시(習)입니다.
테크 기업이 집적해 있는 거대도시 선전(深圳)에 세계로부터의 요인들을 불러모아, 중국전체의 발전상을 스스로의 공적으로 하여 어필하려는 것이 習의 노림일 것입니다.

習는 주최국의 체면상, 인국(隣国)인 일본의 수상을 초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으로서는 아베를 모방하여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고, 긴장완화, 관계개선을 탐색할 수도 있겠지요. 바로 이것이 최후의 수단으로 일본에 남겨져 있는 카드가 될 것입니다.

왕이(王毅)는 베이징APEC에서의 수면하의 상세한 조정의 내용을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시(習)・왕이(王毅)」라인을 움직일 수 있는 노련한 파이프역으로 누가 나설지도 중요합니다. 일본으로서는 이 쪽이 상당한 난제(難題)가 될 것으로 보이네요.

「매파」로 불리는 일을 꺼려하지 않았던 아베였지만, 그의 외교자세에는 현실적,실무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2006년의 제1차 아베정권의 발족 직후, 최초의 외국방문지로 선택한 나라도 현안이 많았던 중국과 한국이었습니다. 보수층을 설복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매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아베의 '와자(業 : 재주)'였습니다. 이것은 다카이치(高市)에게도 같은 경우일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 한한령은 "저리 가라"인 듯 싶다. 중국이 발동하고 있는 '한일령'에 의해 중지되거나 연기된, 일본 예술인들에 의한 중국에서의 이벤트들.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 하마사키 아유미(浜崎あゆみ)의 11월 상하이(上海) 콘서트도 중지되었고, 젊은이들의 우상 유즈(ゆず)의 12월 상하이・홍콩(香港) 등지에서의 공연도 중지되었다. 저들의 공연을 못 보게 되면 고대해온 건전한 중국관객들이 상당히 아쉬워할 턴데….


미-중수뇌 상호방문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11월 24일 미-중 수뇌의 전화협의를 놓고, 트럼프는 SNS를 통하여, 한국에서 합의한 2026년 4월의 자신의 베이징 방문, 그리고 習의 2026년 후반의 국빈방미(国賓訪美)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들은 빈번히 연락하는 중요성에 서로 일치했다」라고도 적어 놓고 있습니다.

미-중관계는 항상 일-중관계의 변수가 되어 왔습니다.

다카이치(高市)는, 트럼프・習의 빈번한 연락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동시에 아베처럼, 트럼프와 연결된 파이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조기방미(訪美)도 모색해야 하겠지요.
미-중수뇌 상호방문 등이 실현되더라도, 일-미 관계가 삐걱거리지 않게 미리 손을 써두고 주의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긴장감이 계속되는 일-중관계에 있어서는, 본래 1년후를 기다리지 말고, 더 이른 단계에서 긴장완화를 실현시키는 일이 바람직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양국관계가 긴박한 상태인 만큼 신중하게 일을 진행시킬 필요는 있습니다.
초조와 안달은 금물입니다. 쌍방이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착지점(着地点)을 찾는 일이 중요해 졌습니다.

@ 시사평론가 이호(실명 : 이규석)가 보내드리는 정통시사쇼・특별뉴스쇼 「News Commentary」 는 유튜브 이호TV (イ・ホTV)를 통해 시청・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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