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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한국정계 -- 문재인은 대통령(정치인)이 되면 안 되었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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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한국정계 -- 문재인은 대통령(정치인)이 되면 안 되었을 사람


6월 25일(토) 밤 EBS에서는 토요명화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방영했습니다.

톰 행크스가 밀러 대위 역을 완벽히 연기해 냈다.

한국 정가에서는, 여당에서건 야당에서건, 이 영화제목이 너무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일병 구하기' '이준석 일병 구하기' 등등으로 비유적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차제에 이 말을 타이틀로 하고 있는 영화('Saving Private Ryan' 美 1998)가 발(発)하고 있는 진정한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 보고, 국가와 시민(개인)과의 관계에 대해 올바른 정의를 내려볼까 합니다.

1944년 노르망디 해변에서 상륙작전중인 미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용사로 나선 美 중산층 가정 라이언가(家)의 4형제는 전쟁중 3명이 장렬한 전사를 하고, 막내인 제임스 라이언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그러나 막내 제임스 라이언 일병도 적진 한가운데에 고립된 채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美 행정부의 입장을 전해받은 美 육군참모총장은 이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특명을 휘하 부대에 내립니다. 美 정부로서는, 라이언가의 집안유지를 위해서는 아들 하나는 살아남아 돌아와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런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라이언 일병을 찾아 구출해 내기 위해 작전 수행중인 8명의 구출대원들. 밀러 대위가 갭틴이다.


라이언 일병 구출대의 캡틴은 밀러 대위(톰 행크스 扮).
밀러 대위와 7명의 대원들(모두 8명의 구출대)은, 라이언 일병인지 '호랑이 이병'인지 적진 깊숙히 고립되어 생사도 알 수 없는 (얼굴도 모르는) 바로 그 1명을 구출하기 위해, 자기들도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자 깊은 같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밀러 대위와 대원들은 천신만고 끝에 제임스 라이언 일병(맷 데이먼 扮)을 찾아내지만, 이윽고 벌어진 독일군과의 불리한 시가전에서 구출대는 거의 다 죽습니다.

라이언 일병을 찾기는 했으나, 이윽고 독일군과 불리한 시가전을 치르게 되는 구출대원들.


밀러 대위는 자신은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도(대원 7명도 대부분 목숨을 잃어 전멸하다시피 했지만), 라이언 일병을 보호하여 살아남게 해줍니다. 그래서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게 해 줍니다.

밀러 대위와 라이언 일병의 조우. 시가전을 앞두고 자기의 가족사에 대해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 라이언 일병의 웃픈 얼굴이 가슴을 친다.


밀러 대위는 죽는 순간에 라이언 일병에게 말해 줍니다. ---- "잘 살아라, 값지게 살아라."

이 영화는 미국의 가치관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전통을 보여주려고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밀러 대위와 휘하 대원들의 행동으로 볼 때는, 자신들을 희생하여서라도 공동체(국가)를 위해서라면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가치관이겠지요.

밀러 대위와 7명의 대원들.


자기와 자기 휘하의 부하들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일병 한명을 구해내야 하는 데 있어, 사실 얼마나 큰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가치관(공동체의 가치관 우선시, 군인의 본분과 군의 명령체계 존중)을 보여주려 했던 대목이, 이 영화의 '미도코로(見所: 놓쳐서는 안되는 장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영화가 얼마나 반의적인 것인지를 알 수가 있겠습니다. 밀러 대위는 자기 부하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 목숨을 희생시키며까지, 정부수반 이름으로 나온「 '평범한 일병'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으면서, 순간 내면적 갈등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라이언 일병을 구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2차세계대전 당시의 조지 C. 마샬 육군참모총장. 전쟁 후에는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먀샬 플랜'으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개인의 희생보다는, 군의 명령체계와 국가공동체의 보위(保衛)를 우선시하여 그에 따랐다고 하는, 그런 함의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문재인은 대통령은 커녕 정치인이 되어서도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 나라꼴이 지금 이렇게 개판이 되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메밀꽃 타령이라? 그런 낭만을 즐기기보다는 반성하는 시간이라도 갖는 게 어때요?
고양이와의 한 때를 보내는 문재인.

개인가치와 공동체가치가 충돌할 때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을 위하여 공동체를 희생하는 것은 정치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바로 조폭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개를 데리고 입을 벌린 채...


문재인은 여러 방면(공기업, 공사 등)에서 자기 떨거지들이나 챙기고, 자기 집권을 위해서는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척결해도 좋다고 하는 나쁜 정치를 해온 장본인였습니다. 국가공동체를 위한 가치관이나 통치철학이라곤 보여주질 못했지요.

또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에는, "자기가족은 자기가 보호한다"는 생명존중의 개념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 가족중시의 미국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위에서도 필자가 잠시 언급했듯이, 라이언 가족(家族)의 유지・보전을 위해 막내인 제임스 라이언을 살려내려고 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제임스 라이언 일병(맷 데이먼 扮).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에는, 미국의 전통(가족보호)과 미국의 가치관(국가공동체 보위)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는 (미국홍보의) 영화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 영화를 끌어다쓰며 '이준석 일병 구하기' '이재명 일병 구하기' 등으로 오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오독(誤読)은 미국의 전통과 가치관에 대한 모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6월 24일 충남 예산군의 어느 리조트에서 열린 의원 워크숍을 마친 후 걸어나오고 있는 이재명.
워크숍을 마친 후의 이재명과 우상호 비대위원장.

이재명이 대장동 사건, 백현동 사건, 성남FC 후원금 의혹, 변호사비 대납, 법인카드 유용, 국고손실죄 등으로 수사가 점점 조여오면서 궁지에 몰리자, '친명(親明)'과 '개딸'들이 이재명에게 인천 계양乙 출마, 당대표 출마 등을 부추겨 (수사-구속을 피하기 위한) 방탄을 쳤고, '국힘' 쪽과 매스컴에서 그를 가리켜 '이재명 일병 구하기'로 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제 그렇게 부르지 말길 바랍니다.

그냥 이재명이 자업자득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고 묘사하면 될 것입니다.

이준석에 대해서도, 점점 세력화하는 '윤핵관'(장제원, 권성동, 정진석 등)들과 '간보는 안철수'에 의해 고립되고 있다고 서술하면 될 것입니다. 20~30세대들과 '혁신委'(위원장 : 최재형) 일부 멤버들이 이준석을 포로(フォロー: follow)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민주당 측과 매스컴은 굳이 '이준석 일병 구하기'로 표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6월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이준석.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미국의 전통과 가치관이 흠뻑 들어가 있는 개념인지라,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에도 잘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를 테마로 하여 한국사회(체제)와 미국을 비교분석해 놓은 터 위에서, 그 개념을 완전 이해한 후 인용을 하여 갖다 쓰더라도 쓰시기 바랍니다.

특히 민주당 쪽에서 끄떡하면 '아무 일병 구하기'라는 말을 지어내면서 말을 남발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영화를 눈으로 봤습니까, 똥구멍으로 봤습니까? 이상하고 한심스럽습니다.


(사족) 그런데 밀러 대위가 라이언 일병에게 마지막 말(유언)을 할 때 "나라에 돌아가 잘 살아라, 값지게 살아라"고 말하지요.

라이언도 백발의 노인이 되어 부인과 아들딸과 손자손녀들을 데리고 밀러 대위의 묘소를 하카마이리(墓参り:참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라이언은 "지금까지 최선을 대해 살았습니다"라고 밀러대위의 영전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백발이 된 나이로 밀러 대위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는 제임스 라이언.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격백(激白)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내가 라이언였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자문하게 됩니다. 높은 자리에서 반드시 잘난 놈이 되어야 잘 사는 것이었을까요? 사회에 보탬이 되면 되었을까요?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진 법질서와 도덕적 질서를 지켰으면 되는 것일까요?

너무나 늦게 이제서야 영화를 다 봤지만, 필자에게는 긴 여운으로 남고 있습니다. 잠을 못
이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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