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yout-wide color-bright post-type-thumbnail paging-view-more">
본문 바로가기

차이나 리뷰(China Review)/習近平정권 Watch

'시진핑 vs 장유샤(張又俠)' 백일항쟁, 다카이치의 중의원 해산・총선거 실시의 일본정국과 기묘한 연동 (까마귀 날자, 배 떨어져?)

728x90
반응형


'시진핑 vs 장유샤(張又俠 Zhang Youxia)' 백일항쟁, 다카이치의 중의원 해산・총선거 실시의 일본정국과 기묘한 연동 (까마귀 날자 배 떨어져?)


중국군의 톱인 시진핑(習近平)과 넘버2의 장유샤(張又俠)가 수면하에서 대치했던 '백일항쟁(百日抗争)'.

어쩐지, 중국 정국(政局)의 격한 움직임은, 2월 8일 주목의 투개표일을 맞이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의 행방까지 좌우할 것 같은 '기가 시마스(気がします : 생각이 듭니다)'.

2025년 10월 하순부터 100일간을 지금 되돌아보면, 마치「바람이 불면 통(桶)장사꾼이 돈을 번다」라는 속담이 어떤 인과관계를 암시하듯이, 중국과 일본 정국이 연동되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일중관계의 파국적인 결말은 놀라울 정도로 극적이었습니다.

예? 무슨 얘기 하려고 그리 사설이 기냐고요? 빨리 얘기하라구요? 하이, 와카리마시타(はい、分かりました). ^^

「다카이치 해산선언」과 같은 날이었던 장유샤(張又俠)의 구속

수상인 다카하시 사나에(高市早苗)가 중의원 해산이라는 결단을 기지회견으로 정식 표명한 것은 2026년 1월 19일 월요일이었습니다.

똑같은 날, 중국에서 군(軍) 현장을 도맡아 관리하던 제복조 넘버원이자 중앙군사의원회 부주석인 장유사가, 당국의 손에 의해 정식 구속되었습니다.
경위(経緯)를 살펴보니, 그 소식은 중국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정보였습니다.
  

중의원 해산에 대하여 기자회견하는 다카이치 수상(1월 19일, 수상관저)

나아가 다카이치가 실제로 중의원을 해산한 것은 1월 23일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일본이 사실상의 선거전에 돌입하자, 다음날인 24일 토요일, 習정권은 중대한 규율위반 등의 혐의가 있다 하여 장유샤(張又俠)에 대한 조사를 정식 발표했습니다.

'마카(摩訶 : 매우)'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중국에서는 일본을 따라하는 듯한 기묘한 연동책(連動策略)을 쓰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과거로부터의 경위를 보더라도, 기묘한 연동은 닮아 있습니다.

우선 중국군을 무대로 한「백일항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클라이막스로 향하는 기점은 2025년 10월 23일 폐막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4中全会)였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장유샤의 독무대로 비쳐졌습니다.

권력집중에 성공했을 터인 공산당 총서기이며 중앙군사위 주석인 시진핑이었지만,
習에 가까왔던 군내 「복건벌(福建閥)」의 주요 멤버들 ---- 習의 심복들 ---- 이 일제히 모두 실각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누구나가 인정하는 군의 실력자 장유샤는, 習의 위엄을 빌려서 너무나도 급속히 대두했던 군내 복건벌(福建閥)을 적시(敵視)하면서, 그들을 내쫓을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확대하여 복건성(푸젠성) 위치를 확인해 보세요.


  

張의 노림대로 복건벌의 전멸에 의해 군 내부의 파워 밸런스는 회복되고 안정된 방향으로 가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習과 그의 맹우(盟友)였던 張又俠의 개인적인 신뢰관계가 최후까지 흔들리지 않는 것이 그 전제였습니다.

그러나 習과 張의 관계는 친구이면서도 서로 격하게 견제했던 관계였던 것으로 나오고 있으니 ---- 즉 지금 한국의 정청래와 이재명처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배신하는 적대적 공생관계 ---- 習과 張의 저 전제(둘의 흔들리지 않는 신뢰관계)는 애초부터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군사 퍼레이드를 위해 천안문(天安門) 앞에서 행진하고 있는 인민해방군의 병사들(2015년, 베이징)

그렇습니다. 習과 張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파국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둘 사이의 '나기(凪 : 고요)'는 어디까지나 표면상만 그랬던 것입니다.

習의 입장에서 볼 때 군내(軍内) 복건벌(福建閥)의 대숙청을 감수하며 받아들인 것은, 오히려 진짜로 큰 표적이었던 장유샤를 몰아내기 위한 일보 후퇴(下準備)였고, 習의 모략이었던 것으로 비쳐집니다.

習-張의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은 해를 넘기면서도 수면하에서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4 중전회(中全会)로부터 3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2026년 1월 중순, 돌연 '야마바(ヤマ場 :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習는 드디어 최종걸단을 내렸습니다. 전세계가 놀란 장유샤의 배제, 즉 잔혹한 숙청이었던 것입니다.

권력투쟁의 한가운데에 한국에서 치러진 미중, 일중(日中) 정상회담

그러니까 2025년 10월 31일, 한국・경주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정상회담(서미트)에서, 習가 다카이치(高市)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을 때, 중국의 내정은, 군을 무대로 한 習-張투쟁의 뜨거운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지금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習에게는 그때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2025년 10월, 일중(日中) 정상회담(首脳会談) 때,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는 다카이치(高市早苗) 수상 (한국・경주)

習의 방한에 있어서는, 뭐니뭐니 해도 美 대통령 트럼프와의 회담이 최우선. 중국의 명운을 좌우하는 대국이 미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전보장 면에서 실력에 있어 크나큰 차(差)가 나는 이상, 중국이 제정신으로 미국과 싸움을 벌이는 일은 지금 당장은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특히 중국 군내(軍内)에서 대(対)대만전략의 중핵을 담당해왔고, 習의「근위부대」라고 할 수 있는 복건벌(福建閥)은 4중전회까지는 장유샤에 의해 괴멸되어 버렸습니다.

더우기 옛날에 맹우이긴 했으나, 지금의 장유샤는 군의 실력자로서, 시진핑에게는 최대의 난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2026년의 대미관계의 안정에 있어 어떻게 해서든지 전망이 서게 만들어 놓고, 한숨돌려 그 다음엔 어려운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내정(内政)에 주력하고 싶었던 것이, 시진핑의 모쿠로미(目論見 : 의도)였습니다.

習 사이드는, 정권기반이 안정되어 있지 않은 다카이치와의 정상회담(首脳会談) 등은 가볍게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단시간에 끝났던 일중 수뇌회담에서 다카이치는 스스로의 말발을 세워 대중관계(対中関係)의 현안에 대하여 극히 대담하고도 솔직하게  부딪쳤습니다.

다카이치가 세게 거론했던 토픽은 홍공,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등에 있어서의 인권문제, 일본인 억류・구속 등등이었습니다.

더욱이 대만에 대한 의견표명도 있었습니다. 이론(異論)을 억누르면서 우선 일중회담을 준비했던 중국외교당국에 있어서는 상정외(想定外)의 전개였습니다. 다카이치를 좀 가볍게 봤던 중극 측이 이 때 화들짝 놀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러한 일중정상회담의 복선상(伏線上)에서, 대만유사시에 관한 다카이치의 국회답변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다카이치가 한국으로부터 귀국하여 얼마 되지 않은 2025년 11월 7일의 일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정세는 일변했습니다.

같은 정치국위원인 왕이(王毅)도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

習의 체면사수(体面死守)에 최대한의 힘을 쏟아왔던 중국외교당국으로서는, 대만문제에 뛰어 든「다카이치・일본」과의 관계를 방치할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대일외교의 책임자로서 당정치국위원이자 외상인 왕이(王毅)라 하더라도, 그 지위가 위험해질 것은 뻔했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왕이 정치국위원 겸 외상(2025년 11월 1일, 한국・경주)

국가보다 먼저 (체제보다도 먼저) 중국공산당 정권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실력조직을 갖추고서 현장지휘를 해온 것이 장유사였습니다. 왕이와 같은 정치국 위원이었지요.

그런데 그 실력자인 장유샤조차 최후는 앗싸리 숙청당하는 경위를 '마노 아타리니 시타(目の当たりにした : 현장에서 목격한)' 왕이 등이 공포심을 품었을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실제, 행방불명이 된 정치국위원은 그 외에도 또 있다고 합니다.

중국은 대만문제를 스스로의「내정(内政)」이라 위치매김하고 있습니다.
극권(極権)을 얻었을 터의 習가 가장 목매고 있는 것은, 대만통일이라고 하는 중국공산당의 대망을 실현하는 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완수해야 하는 군(軍)에 대한 통솔입니다.

「공산당의 절대적인 지휘에 잘 따르는 강한 군대 만들기」라는 명목 하에, 당중앙(党中央)을 체현(体現)하고 있는 習자신의 지휘에 100% 복종하는 군대로 탈바꿈시키고 싶다, 는 것이 習의 야욕입니다. 그 실현 정도는 지금 '미치나카바(道半ば : 중간 지점)'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당내에는 習에의 권력집중에 암묵적으로 저항하는 세력도 많습니다.「장유샤의 존재는 習 스스로의 목적실현에 방해물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習의 마음 속에서의 최종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으로부터 귀국한 習는 실력자인 장유샤와의 복잡한 싸움의 형세를 유리하게 끌고가기 위해, 다양한 책략을 짜 내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미묘한 대만정세까지 얽힌 '다카이치 문제(高市問題)'가 갑자기 끼어들어 왔던 것입니다.

「트럼프는 우짰든 내가 잘 상대해 줬다. 그런데 재수없게 시리 다카이치 문제로  얽혀 버리다니――」. 習로서는 아마 그러한 기분이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習의 똥씹는 듯한 기분을 과잉 '손타쿠(忖度 : 윗사람의 기분을 헤아려서 알아서 기어서 행동함)' 한 중국외교당국의 행동패턴도 과한 면이 있었고, 그리하여, 다카이치 개인을 표적으로 한 이상한 대일조치(対日措置)가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2025년 11월 중간 쯤부터 그것 대일조치는  순차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이 習정권에 의한 상궤를 벗어난 대일압력은 역(逆)으로 다카이치 정권의 지지율을 크게 상승시키는 '오이카제(追い風 : 순풍)'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이번의 '중의원해산・총선거'라고 하는 다카이치의 결단을 밀어주는 기폭제가 되어 버렸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이닐 수 없겠습니다.
  

'열사기념일(烈士記念日)'의 식전에 참가하고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앞줄 左)과 장유샤(張又俠)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앞줄 右) = 2025년 9월, 北京

중국 공산당의 블랙 박스 내에서 극비리에 펼쳐진, 군이 무대가 된「시(習) vs. 장유샤(張又俠)」의 내정상의 격한 투쟁. 그것은 결과적으론 일본정치에까지 아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의원 선거 직후에도 習정권의 동향에 경계 필요

중국의 내정은, 장유샤를 숙청하는 데 이르른「백일항쟁(百日抗争)」의 결착으로 완전히 안정되었다고 볼 수가 있을까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2027년의  차기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수면하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권력투쟁은 금후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일본의 중의원 선거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일단 결정된 習정권의 대일정책을 둘러싼 대방침(大方針)이 단기간에 완전히 뒤집힐 가능성은 낮을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미중 수뇌회담(정상회담)에서 결정된 국빈으로서의 트럼프의 중국방문도 3개월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미관계의 일시적인 안정은, 중국이 일본에 강하게 나올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중의원 선거의 직후에도 일본은 중국에 대한 충분한 경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習는 장유샤(張又俠)를 잡기 위해 장장 3년을 노려왔다!

・習는 장유샤에게 오직(汚職)의 올가미를 씌워 조사(調査)에 들어가며 숙청시키는 비열한 방법을…

위・아래에 종종 뜨는 선정성 광고는 막아도 막아도 계속 뚫고 들어오고 있네요. 양해하옵시고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 시사평론가 이호(실명 : 이규석)가 보내드리는 정통시사쇼・특별뉴스쇼 「News Commentary」 는 유튜브 이호TV (イ・ホTV)를 통해 시청・감상하세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