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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ll of The Wildⓣ

버나드 쇼와 예수 그리스도와 석가모니 -- 진정한 실존(実存)은 어떤 방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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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쇼와 예수 그리스도와 석가모니 -- 진정한 실존(実存)은 어떤 방식일까?


블로그 친구가 아래와 같은 버나드 쇼에 관한 글을 보내 주었습니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행하고(행동하고) 실천하라'는 버나드 쇼가 남긴 명언(明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 아래 버나드 쇼에 대한 글을 읽고 나서 한숨 돌린 후, 이 대목으로 다시 돌아와 필자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


버나드 쇼의 말처럼 우물쭈물대지 말고, 즉각 당장 행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즉각 당장 행한다고 꼭 결실을 보는 건 아닙니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대로 행하다가는 '야리스기(やり過ぎ : 지나치게 행함)'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例)일지는 모르나, 소련의 스탈린, 북한의 김정은 등이 '야리스기'의 대표적인 샘플이 될 것입니다.

노자는 '무위 자연'을 노래하며 경애적(境涯的)인 삶을 보여주려 했고, 석가는 허무(虚無)와 공무(空無)를 설(説)하며 욕망과 무리한 행함을 경계했습니다.

그러니까 버나드 쇼가 염두에 두었을 '난 사람'보다는, 노자와 석가모니 등은 '된 사람'이나 '든 사람'을 가리키면서 행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되지 않은 채 '야리스기'하면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김정은 등처럼 되는 것 아닐런지요?

그런데 노자나 석가모니 등 현자・성인들이 가리킨 경애적(境涯的)인 삶보다는, 같은 성자급인 예수는 진흙탕같은 현실 속으로 내려와 실천하는 모습을 권장하고 있으니, 과연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할런지 고민되는 면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생전에 '쇼부(勝負 : 승부, 지상천국 건설)'를 보려 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친척 장사 지내는 일보다 전도가 더 시급하다'는 말을 했고, 땅팔고 은행빚까지 내서 헌금하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 것처럼 비쳐지기도 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언설(言説)은 하나의 이념이나 규범처럼 되어, 지금 여러 갈래의 현대 기독교교회에서도 행위・행동・실천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버나드 쇼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 그리스도의 언어(言語)의 영향 속에서 살아왔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자, 드라마틱한 지상천국을 초(超)스피드로 이룩하려 했던 그리스도의 방식과, '전생(転生)'까지 시야에 넣어 조용하고 평화적으로 롱텀(long term)으로 사회공동체를 이룩하려 했던 석가모니의 방식 중, 여러분들은 어느쪽을 선호하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방식에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조용하고 평화적으로 느린 방식으로 사역(使役)을 하다가는, 시련을 당하고 침통해 하고 애통해 하는 민초들의 고통의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이라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아와레나(哀れな : 불쌍한) 민초들에 대한 그런 연민의 정에서 노정(路程)을 서둘렀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아래 버나드 쇼의 말을, 우리사회에 전승되어 온 여러 사회규범이나 레가시 등을 반추해 보면서, 긍정적으로든 비판적으로든, 잘 의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 벡크의 잠깐 일언(一言) -- 영화속 인물 스프루안스 장군

↑ 영화 '미드웨이'(美, 1977)에서 레이몽드 스프루안스(Raymond A. Spruance) 소장(少将) 역을 맡았던 명배우 글렌 포드(Glenn Ford, 1916~2006). 스프루안스 장군의 기민하고 민첩한 행동이 美해군으로 하여금 미드웨이 해전(1942.6)을 승리로 이끌게 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 영화 '미드웨이(Midway)'에는 헨리 폰다, 로버트 미첨, 찰톤 헤스톤,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郎), 제임스 코반 등 기라성 같은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지만, 글렌 포드의 퍼포먼스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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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쇼(Bernard Shaw)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영국의 극작가 겸 소설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950년, 95세의 나이에 임종을 앞둔 그는 본인이 직접 남긴 말을 묘비에 새겨 달라 했고,

아래는 (그의 유언을 받든 사람들이) 그의 유언을 받아 들여
그의 묘비에 적어 놓은 글입니다.

----“내 인생,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

버나드 쇼가 묘비명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무엇이던지 " 당장 하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당장 실천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걸어가라는 뜻일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에 옮기라는 주문이었을 겁니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년 ~ 1950년)는 아일랜드의 출신의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비평가로서,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버나드 쇼는,
자기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라고 죽음에 임박하여 자기 삶을 후회하고 반성하게 된다는 말을 하고자 했을 겁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행동하지 못하면 고민・걱정이 되고, 생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민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면서도 그림자처럼 고통도 따릅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인데,
뒤에 있는 빛은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림자만 보고 머뭇거립니다.

무엇이 더 좋을까?
더 쉬운 것은 없을까?
돈은 될까?
생색은 날까?
남들은 뭐라 할까?
운은 따라줄까?
오만가지 생각만 하다가 청춘을 낭비하는 사람이 될까 두렵습니다.

우리의 삶은 육상경기처럼
완벽한 출발은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확신만 가지고 출발해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달리면서 생각하니 문제가 단순화 되고 해결책들이 길처럼 열렸다”고 말합니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의 묘비명 : "살고, 쓰고, 사랑했다."

*미국의 교육자이자 선교사인 아펜젤러의 묘비명 :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한국에 나서 한국에 묻히어 한국의 흙이 된 고(故) 아펜젤러 선생의 묘비명인 것입니다.

2023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지난 해의 아쉬움과 후회의 늪에서 빠져 나와, 각자의 묘비명을 어떻게 남길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서 새출발을 하는 게 어떨까요?

~~블로그 친구가 보내온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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