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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막후 실력자 와타나베 쓰네오의 드라마 같은 인생과 정치
8월 9일 밤 9시에 방영된 NHK 스페셜에서는, 요미우리 신문(読売新聞) 그룹 본사 대표이사 겸 논설주필인 와타나베 쓰네오(渡辺恒雄) 씨(94세)를 롱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프로 『와타나베 쓰네오 전쟁과 정치 - 전후 일본의 자화상』이 방송되었습니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정 권으로부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쳐서 전후정치의 막전막후에서 활약해온 와타나베 쓰네오 씨는, NHK에 의한 여러 회(回)에 걸친 롱 인터뷰를 통해 일본정치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해 주었습니다.
와타나베 쓰네오 씨는 전쟁을 경험했던 일본의 역대 총리들의 ‘전쟁체험’이 전후일본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직접 체험하고 나중 총리직에 올랐던 일본 총리들은, 전쟁의 불합리성과 무도리(無道理)함을 통감하면서도, 패배한 전쟁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된 일본인들을 애석해하는 두 개의 감정이 착종(錯綜 : 뒤섞임)하는 가운데, 약간은 애매한 기준에서 전후정치를 펼쳐왔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따라서 전쟁과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두고 정치를 할 것이냐가 전후 일본정치의 과제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전후 출생자들이 일본인구의 85%를 차지하고 있어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엷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후 75주년을 맞이한 일본의 전쟁관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여 갈지 주시해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와타나베 쓰네오의 독점 고백이 어느 정도의 힌트를 제공해주고 는 있습니다.
와타나베 쓰네오는 1926년(大正 15년)에 도쿄에서 출생했고, 1945년 4월 도교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바로 태평양전쟁에 학병으로 징집되어 육군2등병으로 군대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군대의 폭력성과 무도리(無道理)함을 잘 알았던 와타나베는 당시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을 읽고 군대생활을 버틸 용기를 길렀다 합니다.
종전 후 1945년 12월에는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여 이후 열렬히 공산당 활동을 하게 되었으니, 청년시절 그가 얼마나 깊은 사상적 갈등을 겪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공산당 입당의 동기는 천황제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1947년 12월 공산당에 탈당계를 낸 와타나베는 1949년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바로 대학원을 중퇴하고, 1950년 11월 요미우리 신문사에 입사, 정치부기자를 거치며 기자 겸 '정치 당사자'로서 일본정계의 대흑주(大黒柱:거목,거간꾼)로 우둑 서게 되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와타나베는 1991년 요미우리 사장이 되었고, 1996년에는 프로야구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오너가 되었으며, 2005년에는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그룹 본사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와타나베 쓰네오 씨는 요미우리신문 정치부 기자 시절, 한일국교정상화 협상에서도 한국의 JP에게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이번 NHK독점 고백에서 드러났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은 1951년에 시작, 약 14년간에 걸쳐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별로 진전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한일협상에 진전이 없었던 한 이유로는, 日 자민당의 부총재로서 강력한 막후 실력자였던 오노 반보쿠(大野伴睦) 씨가 혐한파 인사로서 한국을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오노 부총재와 JP를 연결해준 사람이 바로 정치 거간꾼 와타나베 쓰네오 씨였습니다. "오노 부총재는 JP를 만나고 나서 JP에 한눈에 반했다"고, 와타나베 쓰네오 씨는 그 당시의 그 둘의 관계를 회고했습니다.
막혔던 오노 부총재와 JP 사이의 통로가 열리면서, 한일양국은 1962년 12월 한일청구권 처리의 합의문서의 내용이 거의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요미우리신문에는, 일본 측이 한국에 무상 3억 달러, 차관 2억 달러, 민간차관 1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대특종이 1962년 12월 15일자로 실렸습니다. 와타나베는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의 합의내용을 JP로부터 듣고 그 때 특종을 쓸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JP는 곧이어 오노 반보쿠(大野伴睦) 부총재를 서울로 초청했습니다(1962년 12월). 오노를 완전히 구워삶아 자기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JP의 책략이 아니었겠습니까? 남산의 중앙정보부(KCIA) 본부에서 열린 김종필(金鍾泌, JP) - 오노(大野)회담에서, 오노 부총재는 대담한 발언을 하는 JP에게 또 한 번 홀렸다고 합니다. 이 때 오노는 JP에 대하여 "36세의 어린 나이지만 참으로 대단한 남자로다!"하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JP의 그 대담한 발언의 내용에 대해서는 차후에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이 JP-오노 회담으로 두 사람은 더욱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한일조약(한일청구권협정)을 성사시키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국을 그토록 싫어했던 오노 부총재는 JP와의 만남을 계기로 '친한파(親韓派)'가 되었고, 오노는 실제로 1963년 12월 박정희 대통령 취임기념식전에도 일본정부의 특사로 참석, 한일가교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6.3사태 등 한국 측의 사정으로 한일국교정상화과정이 주춤하긴 했어도 1965년에 드디어 한일조약이 체결되었지요. 이 험준한 한일국교정상화과정에는 JP-오노라는 두 남자의 '브로맨스'가 한몫을 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그 두 사람을 엮는 '뚜쟁이' 역할을 해준 사람은 바로 와타나베 쓰네오였구요~!
한국의 풍토에서는 '브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는 뭔가 쑥스럽고 창피스럽기까지 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그래도 자기의 '브로맨스'에 대해 고백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요도가와 나가하루(淀川長治)가 '터미네이터'의 주인공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목욕탕을 같이 가고 싶다며 브로맨스를 고백한 일,호세이대학(法政大学)의 4번타자 타부치 고이치(田淵 幸一, 한신 타이거즈 입단)가 메이지대학의 에이스 호시노 센이치(星野仙一, 주니치 드래건즈 입단)를 대하며 "남자가 남자에게 반했다"고 하면서 커밍아웃을 한 일 등, 이런 일들이 일본에서는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 시기의 자민당 부총재 오노 씨도 한국의 JP에 대해 아마도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재미있지요.
와타나베 쓰네오 씨는 한일관계 비화뿐만이 아니라,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정권으로부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에 이르기까지 70여년에 걸쳐서 일어났던 일-미관계와 일-중관계에 있어서의 비화도 NHK스페셜을 통해 독점고백했습니다.
와타나베는 1945년 학병으로 징집되었을 때의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悲愴)’을 장송행진곡으로서 스스로 듣기도 하고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는군요.
와타나베는 애처가로도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와타나베는 1990년대말 전립선암을 앓으며 죽을 뻔한 지경에 이른 적이 있습니다. 와타나베 본인도 죽음을 각오했었다고 합니다. 이 때 죽음을 앞두고 벌인 부인 아쓰코(篤子) 씨와의 '마지막 정사'가 '문예춘추(文芸春秋)'에 소개되어 일본 전국에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와타나베 씨는 전립선암으로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었던 목숨을 병원에서 지탱하면서 기적적으로 생환(生還)하여 돌아왔습니다. 비록 노구이지만 부인 아쓰코와의 '사랑의 영위'도 계속할 수 있었다 합니다. 그러나 그 후 부인 아쓰코는 인지증(치매)에 걸려 고생하다가(이 때 간병은 와타나베 쓰네오가 직접 했다고 합니다) 2017년 10월 20일에 87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최애(最愛)의 사랑을 먼저 떠나보낸 와타나베는 슬퍼서 은퇴할 법도 한데 그러나 역시 대단합니다. '생애현역'을 관철시키며 지금도 94세의 나이로 요미우리 그룹 본사 대표이사 겸 논설주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강철같은 사나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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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uck4514new.tistory.com/42 [Lee Ho'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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