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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보라

韓-日아나운서 대결, 누가 이 시대 최고의 아나운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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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아나운서 대결, 누가 이 시대 최고의 아나운서였나

일본의 임택근(任宅根), NHK아나운서는 누구?

 

 

1960년대 한국 시골처녀들의 사모와 연모의 정을 한 몸에 받았던 전설의 아나운서 임택근(1932. 12. ~ ).

 

 

 

임택근은 1951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1961년 문화방송이 개국되자 1964년  문화방송으로 이직했다. 그 후 아나운서로서의 탁월한 경지를 열어나가며 신화적 존재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1966년 6월 25일 복서 김기수의 세계타이틀맷치에서도 다이내믹하게 실황을 중계, 국민들에게 자부심과 행복을 가져다 줌으로써 '국민 아나운서'로 우뚝 서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KBS에서는 이광재 아나운서가 인기를 폭발시키며, 임택근 아나운서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으나, 그후 이광재 아나운서가 해외로 이주하게 됨으로써, 국내에서는 임택근의 독무대가 되었다.

 

임택근은 도시형 신사로서 특히 시골처녀들의 애모와 사모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한국 남성들에게도 호감을 주어 그의 뛰어난 활약은 '남자의 로망'으로 띄워지면서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필자에게도, 임택근은 '선구적이고 원초적 울림'을 발산하면서 '인생의 노스탤지어(nostalgia)'를 느끼게 해주고 있는 잊을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같은 시기에 임택근 아나운서와 비슷한 아나운서가 한명 (NHK소속 미야타 테루 아나운서) 있었다. 신장도 임택근과 비슷한 정도였고, 헌앙한 풍채가 아주 좋았었고, 목소리는 초일류의 것이었다.

 

 

 

 

 (클릭) 1970.12.31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미야타 테루(宮田輝) 아나운서. 今晩の番組から.  

 

 

이 미야타 테루(宮田) 아나운서가 바로 임택근 아나운서와 같이 한-일경연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가 같은 무대에 서서 공연을 했다면 그것도 '꿈의 무대'이다. 브루스 윌리스와 리처드 기어가 같이 출연했다면 그것도 또한 꿈의 무대이다. 진 시몬즈와 캐롤 베이커가 한 영화에서 경연하면 관객들은 한눈에 두 명배우를 보는 기쁨으로 즐거워했을 것이다.

 

아무튼 한-일 최고의 아나운서로서 이 두 사람은 만날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으며, 현해탄을 사이를 둔 "운명의 남자들"의 조우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위 사진은 제20회 NHK가요홍백전(1969)에서 총합(総合)사회를 보고 있는 미야타 테루(宮田みやた てる, 1921.12.25. ~ 1990年.7.15.) 아나운서.

미야타 테루 아나운서는 1974년에 NHK를 퇴직, 동년 참의원(参議院)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로 입후보, 톱으로 당선되는 인기를 구가했다(참의원 당선횟수 3회, 임기:1974~1990). 그 후 1978년 제1차 오히라(大平)내각에서는 농림수산 정무차관(農林水産政務次官)에 취임한다.  

 

 

 

 

 

 

●「미나토마치 브루스(港町ブルース, みなとまちブルース)」는 1969년 4월에 발매된 모리 신이치의 싱글 레코드(森進一シングル・レコード). 제20회 NHK가요홍백전(第20回NHK紅白歌合戦, 1969)에서 사회를 본 미야타 테루 아나운서가 애정을 가지고 소개해준 모리 신이치의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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