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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크의 F스토리

벡크의 F스토리 -- '악의 꽃'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은 남편 잡고 시아버지 잡은 패륜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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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크의 F스토리 -- '악의 꽃'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남편 잡고 시아버지 잡은 패륜 며느리?!

  

※ 이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팩트(fact)는 아니나, 그렇다고 페이크(fake)도 아닌,  다만 픽션(fiction)으로 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우와사(うわさ : 소문)의 진상'은 조만간 그 사실 여부가 확실히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노인 폠훼 발언으로 사회적 대(大)물의를 빚고 있는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右)이 이재명과 악수하고 있다.

    
약 2주전부터 이야기가 돌았으나 어제 그제 사이에 게시판에 새로 올라온,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에 대한 쇼킹한 '살모사 스토리'입니다. 그 충격도(度)는 청(清)나라의 서태후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역대급의 돗수(度数)로 느껴집니다.

가히 이 '살모사 가족사(史)'의 '모치누시(持ち主 : 주인공)'인 김은경이, 민주당에 들어가 실력을 발휘하여 구현(具現)하려 했던 것은 바로 '살모사 정치'가 아니었을까요? ㅎ~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진보 흉내를 내는---- 정치인 중에는 이런 살모사 정치인이 꽤 있다고 합니다. 그럼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김은경은 최근 며칠 사이에 "악독한 며느리(嫁)와 악랄한 부인(婦人)"으로 그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게시판을 잔뜩 달구고 있다 합니다.

김은경은 원래 가난하고 못 사는 집 '애'였는데, 부잣집 남자를 남편으로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고 합니다.

김은경은 그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여 같이 독일로 유학했는데, 거기서 아이가 생겼다는군요. 그런데 그 남편은 중간에 유학을 중단하고 국내로 귀국했다고 합니다.

(독일로 유학하여 학위를  못 따고 도중 귀국한 것은 광운대 교수 진중권이나 서울대 교수 김철수와 사정이 비슷하군요. ㅎ~)

김은경은, 남편은 귀국했으나 혼자 독일에 남아 학위는 딴 모양입니다. 전혜린을 '오마주'하려 했던 것일까요?

그러나 전혜린은 '여자의 로망'이 있는 낭만파 천재 女교수였으나, 아래 글에서 설명되듯이 김은경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돈과 권력을 추구한 현실주의적 살모사 정치꾼였다는 것이 다르다는 평(評)입니다.

약 20년 전의 어느날 김은경의 남편은 아파트에서 혼자 뛰어 내려 자살을 하게 됩니다. 아~, 남편이 고민 끝에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자살을 하는데, 아내인 김은경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무튼 그 남편의 시누이가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김은경은 "남편에게 아주 나쁜 마누라"였다는 전언(伝言)입니다.

더구나 김은경은 남편과 사별 후 18년간 시부모를 모셨었다고 강변하고 있는데---- 김은경은 8월 3일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찾아 노인폄하발언에 대해 사과하면서도 노인회장으로부터 사진 따귀를 맞았다. 이 현장에서 김은경은 남편사별 후 18년간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으니 그 점을 참작해 달라는 투로 교언(巧言)을 늘어 놨다---- 이는 샛빨간 거짓말이라고 그 시누이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김호일 노인회장으로부터 '사진 귀쌰대기'를 맞고 있는 김은경. 8월 3일 서울 용산 대한노인회 중앙회.


김은경의 시누이의 증언을 들어보면 "무슨 개소리여? 남편 죽자 집 나가 '뽀다구'내면서 혼자 좋다고 잘 살아간 주제에 니가 무슨 18년간 시부모를 모셨냐?"는 뉘앙스로 반격하고 있습니다.

김은경이 남편과의 사별 후 시댁에 들린 것은 딱 한번 있었는데, 그건 시아버지가 한 많은 인생을 마감했을 때라 합니다.

김은경이 금융감독원의 부원장의 '가타가키(肩書き : 직함)'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꽤 많은 부의금이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바로 그 돈 수억원을 챙겨가기 위해 나타났다는 게 김은경 시누이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기맥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얘기입니다.

김은경의 시아버지남편은 둘이 노력하여 어떤 회사 하나를 만들어 운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은경은, 제대로 잘 굴러가던 이 회사가 시아버지로부터 남편에게 명의가 돌아가도록, 즉 이 회사의 오너가 바로 남편이 되도록 교묘한 '획책'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은경의 남편은 차마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뺏을 수는 없어 망설였지만, 김은경의 끈질긴 '타쿠미(巧み : 계교)'로 결국 회사의 소유권은 김은경의 남편에게 넘겨졌다는 것인데요…

이 대목에서, 김은경의 시누이는 "오빠가 올케(김은경)에게 아주 잘 가스라이팅을 당했어요"라고 회고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 어떤 사연으로든지 간에 남편이 투신자살하자, 김은경은 이 회사를 친정동생에게 넘겨 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시아버지를 회사에서 쫓아내게 된 꼴이 되겠지요?

김은경의 시어머니도 이 때의 충격으로 '이쿠 고토니 낫타 소우데스(逝く事になったそうです :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후 김은경의 시아버지는 어찌 되었을까요? 평생 공들여 일궈온 회사를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이 노인의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낙향하여 긴 세월 시름시름 골골 앓다가 결국은 '도코니 쯔이타(床についた :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진보'라고 기름 치고 다니는 온나(女) 하나 집에 잘 못 들이면, 그 시집은 바보되고 망하고야 만다는 실감나는 사례(事例)가 아닐런지요?

역시 집안이 잘되려면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할 것 같습니다. 옛말이 하나도 안 그르군요.

@ 대원군도 며느리 민비에 쫓겨나 고궁에 유폐되어 죽음을 맞았는데, 물론 이것은 '추체험적(追体験的) 이해'로 역사해석을 다시 해 볼 필요는 있으나, 민비가 친정 민씨 형제들을 조정에 들이려했고 대원군과 마찰을 빚은 것은 사실이지요?

  

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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