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뷰(China Review)/習近平정권 Watch

(시진핑 3기 정권) 세기의 궁정정치극과 후진타오를 비극으로 몬 시진핑의 권력집중

벡크 2022. 11. 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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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3기 정권) 세기의 궁정정치극과 후진타오를 비극으로 몬 시진핑의 권력집중

 

베이징 중심부에 있는 요인들의 집무지 '중남해(中南海)'의 깊은 심부에서 비밀리에 전개된 궁정정치극(宮廷政治劇)이, 세계의 미디어 앞에 그대로 노출되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69)은 제깐에는 매우 화가 났던 것(怒り心頭)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런데 이 궁정정치극의 주연을 전 공산당 총서기 후진타오(胡錦濤, 79)로 하여 사건을 해석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지막지한 '그 자' 시진핑은 비록 극권의 권력을 잡게는 됐지만 조연(脇役)에 불과한 존재가 될지도 모릅니다.

시진핑은 전임의 장로(長老) 후진타오를 '건강불량'이라는 이유로 제20회 공산당대회의 폐막식으로부터 도중퇴장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중국공산당대회 폐막식에서 어느 친삐라에게 지시를 하고 있는 시진핑(左). 직후 후진타오 전 총서기(右)는 퇴장 당했다(10월 2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중국정치의
심층을 알고 있는 어느 인사는, 엄격한 정보통제 속에서도 흘러나왔던 당시의 현장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폐회식의 그날은, 인민대회당의 화려한 무대에 앉은 요인들의 누구나가, 서로로부터 숙지된 것처럼, 건강이 좋지 않은 후진타오와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오. 얼핏 스치는 듯이 만나 눈을 마주칠 냥이면 필경 (후진타오로부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될 터니, 그러면 자기가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되니까, 후진타오와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암묵적인) 메시지였다오."


그렇다면 그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후진타오에 대해서는, 마치 요(要)주의인물에 접하지 마라, 부은 종기에 닿지 마라고 하는 취급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라는 부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까놓고 시진핑에의 불만도 드러내는 후진타오의 솔직한 한탄」이라 보면 되겠지요.

시진핑이 전(全)권력을 쥔 지금, 누구라도 장로(長老)----즉 후진타오---- 와 이야기하는 것조차 위험한 행위가 되겠지요.
그래서 그 누구라도 후진타오를 피하며, 신체가 쇠약해져 있는 장로에의 존중과 배려도 없이 차가운 태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10년전까지도 엄격한 규율이 특징인 그 공산당의 우두머리였던 인물(후진타오)이, 시진핑의 꽃무대에서 왜 불만을 표시하려고 하였던 것일까요?

원래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애당초 장로(長老)라는 인물은 공공의 장에서는 자기맘대로 발언할 수 없고, 사적으로도 현재의 우두머리----즉 시진핑----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게 보통입니다.

 

폐막식에서 도중 퇴장당하고 있는 후진타오(胡錦濤=중앙)와 리커창(李克強=左)과 시진핑(習近平=右). 2022년 10월 22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그러나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드물게 볼 수 있는 이 특이한 궁정정치극을 해독할 수 있는 키워드는 '건강 이상'과 '진심 토크'가 될 수 있습니다.

후진타오는 확실히 건강이상(不良)이 맞습니다. 하지만 건강상태가 불량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솔직한 한탄을 쏟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 때 후진타오는 스트레이트로 '진심 토크'를 할지도 모를 위험한 상태였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은 취해서 널브러져 있을 때 본심을 내뱉으며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 사람의 심층심리가 그대로 표출되어 나오곤 합니다.

후진타오는, 10월 22일에도 양옆에 있었던 시진핑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리잔수(栗戦書, 72)에게 무언가 자기의 의견을 부딪치며 '내게 말하게 하라'고 다그쳤다, 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눈여겨볼 중요한 '스쿠프'가 하나 있습니다. 후진타오의 병상(病状)을 소개하는 신화사(新華社)의 영어판 트위터의 두번째의 것입니다.

자기를 기자라고 밝히는 투고자는 신화네트의 부총재인 류가문(劉加文)이라는 중진입니다만, "후진타오는 당대회 폐막식에의 참석을 주장해 왔다. 최근 건강회복에 시간이 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고 쓰고 있습니다.

폐회식에 출석하고 싶은 것은, 장로(長老)로서의 후진타오의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신화사의 설명에는 「후진타오의 건강상 출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진핑의 의향에 반해 출석해 버렸다」고 하는 함의(含意)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심독(深読)해 보면, 후진타오는 폐회식에의 참석이라는 행위 그 자체로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싶었다, 고 풀이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시사(示唆)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상은 숲속에 가려져 있다 하더라도, 한가지 명확한 점은 있습니다. 승승장구하는 시진핑의 옆자리에 앉았던 후진타오는, 스스로의 한심스러움을 한탄하면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심경이었을 겁니다.
장로들이 갖고 있는 붉은 서류들 속에는 후진타오가 보기에도 싫은 명부가 하나----중앙위원회 멤버 명부---- 들어 있었습니다.

직전의 차기 중앙위원회 멤버(위원)의 선출의 결과,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을 떠받들어 주었던 '귀여운 동생' 리커창(李克強, 67)이 최고지도부에서 헐벗기면서 물러났고, 중앙위원회 위원(총 205명)으로도 남지 못하게 됐습니다.

또한 '단세이오 고메테(丹精を込めて : 정성을 다하여)' 키워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共青団)과 연(縁)이 깊은 개혁파 왕양(汪洋, 67)의 운명도 리커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10.23=제1중전회 개최일)에는, 자식처럼 키운 부수상(副首相) 후춘화(胡春華)도 최고지도부----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에 들기는 커녕, 59세라는 젊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국 위원에서도 배제됐습니다.
(즉 후춘화는 정치국 상무위원 7명에도 못 들고, 정치국 위원 17명에도 뽑히지 못한 것입니다.)

공청단의 진정한 호프로 불린 호남자(好男子)----즉 후춘화----의 너무나도 슬픈 말로(末路)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왼쪽 사진 : 폐막식에서 후진타오가 퇴장당하는 가운데 '똥씹은 얼굴'로 앉아 있는 후춘화(左로부터 두번째) / 오른쪽 사진 : 중국 공산당 제20기 제1중전회(10.23)에서 시진핑 앞에서 멋적은 박수를 치고 있는 후춘화. 자신의 대부인 후진타오를 내쫓은 원수이기는 하나 시진핑의 권력 앞에 굴복하여 '연기(演技) 박수'를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그런데 웬 쇠도둑놈들 같이 생긴 애들만 우글거리는 중에서 후춘화의 모습은 그래도 스마트하고 훤한 모습이다. ㅎ~

 

티베트에서 자기가 건강을 해쳤을 때, 손과 발이 되어 일해 주었던 귀여운 꼬붕 후춘화조차 지켜내지 못했다고, 후진타오는 한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진핑은 인사내용을 사전에 후진타오에게 통고해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장로 후진타오는 익일(10.23) 일어날 공청단파(共青団派)에 있어서의 더큰 비극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상태로는 조직이 약체화되고 7천만명을 넘는 공청단원(共青団員)들은 완전히 길을 잃어 버릴 거라고 후진타오는 염려했을 겁니다. 즉 공청단이라는 군단(軍団)의 붕괴를 감지한 후진타오의 한탄이 터져나오고 있었던 거지요.

 

시진핑 3기정권 최고지도부에 들어간 '매그니피션트 세븐'. 서열 1위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서열 2위 리창(李強, 앞줄 오른쪽), 서열 3위 자오러지(趙楽際, 2열째 오른쪽), 서열 4위 왕후닝(王滬寧, 2열째 왼쪽), 서열 5위 차이치(蔡奇, 후방 중앙), 서열 6위 딩쉐샹(丁薛祥, 후방 왼쪽), 서열 7위 리시(李希, 후방 오른쪽)로 중국의 신지도부(新指導部=정치국 상무위원 7명)가 구성되었다. (2022년 10월 23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집권 3기에 들어간 시진핑은 스스로의 비서, 친구들로 이뤄진 최고지도부 멤버를 10월 23일 '피로(披露 : 보여줌)'하면서 세계를 경악(驚愕)시켰습니다.

 

10월 22일 장로 후진타오가 도중 퇴석을 강요받은 장면과, 10월 23일의 이 '매그니피션트 세븐'의 '오히로메(お披露目 : 보여주기 쇼)'를 관찰해 보면, 일견 시진핑의 압승으로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중국사에 새겨질 클라이막스는, 자랑스러운 시진핑의 '오히로메(お披露目)'(10.23)보다는,
오히려 히니쿠나 고토니(皮肉なことに : 역설적으로) 후진타오의 비극적인 종말이 생중계된 전날(10.22)의 비극적인 장면이 (클라이막스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10월 22일 피날레를 보여준 '후진타오 극장'은 10년의 (시진핑과의) 전쟁의 모든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건강불량이라 알려진 후진타오는, 시진핑의 업무를 시다바리하는 중앙변공청(中央弁公庁)의 부주임 등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기는 했으나, 퇴석을 거부하며, 두번이나 자리로 되돌아오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신화사도 언급했던 '(후진타오의) 강한 의지'라는 표현에서 보더라도, 이 시점에서 회장(会場)에서 떠나는 것은 장로 후진타오의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시진핑과 말을 교환한 후, 리커창의 어깨를 툭 치고 걸어나간 후진타오는, (비록 건강불량 상태라지만) 제정신으로 보였습니다.
리커창의 어깨를 툭 친 것은 퇴임으로 쫓겨나는 리커창의 슬픈 심정을 배려하는 진심으로부터의 위로의 표현이었을 겁니다.


후진타오는 7년전부터 파킨슨병을 앓아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도 나돌았지만, 파킨슨병이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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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3일 베이징에서의 대규모 군사퍼레이드 때 후진타오도 천안문 누각에 올랐는데, 그의 왼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파킨슨병의 가장 분명한 증상인 '진전(振戦)'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후진타오의 파킨슨병은 그후도 조금씩 진행은 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병의 치료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지(認知) 능력에 있어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명확한 것이었다면 개회식과 폐회식에의 출석을 의사단이 막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일이, 지도자들의 건강을 엄격히 관리하는 공산당중앙보건위원회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비공개였던 본회의장에 외국미디어들이 들어오도록 허가된 직후에 '후진타오 극장'이 열린 타이밍입니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타리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이상하다는 것이지요.

퇴장을 강요당한 후진타오가 한마디 건넸을 때의 시진핑의 태도는 너무나도 차갑고 냉담했습니다. 장로 후진타오 쪽으로 몸을 돌려서 인사를 하는 예의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시진핑이라는 인물의 '신콧쵸(真骨頂 : 진면목, 진짜 모습)'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이 시진핑 3기 정권의 수립으로, 1978년에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시대도 본격적으로 그 막을 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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