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한국문화

전두환 사망, 전두환(全斗煥=젠또깡)의 공죄(功罪=공과)

벡크 2021. 11. 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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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사망, 전두환(全斗煥=젠또깡)의 공죄(功罪=공과)


젠또깡이 11월 23일 오전 8시 40분경, 자택에서 혈액암(다발성 골수종) 투병 중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잠깐 一言) 필자가 일본에 있을 때 시부야(渋谷)에 있는 한 치과에 들렸을 때, 치과의사 분이 필자에게 '젠또깡'이라 부르면서 그의 소식을 묻더라구요. 그후 필자는 중앙일보 조인스 블로그 등에 '젠또깡'이라고 쓰면서 그의 공죄(功罪 : 공과)에 대해 이야기해보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분들도 골계적(滑稽的 : 희화적)으로 '젠또깡'이라 쓰는 이들이 생겨나더라구요. 요컨대 '젠또깡'이라는 별명은 필자가 제일 먼저 전두환氏(육사 11기)에게 붙여준 칭호였다는 것입니다. 저작권은 필자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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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자택을 나설 때 찍힌 초췌한 젠또깡의 모습(2021.8.9, 광주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 출석차)


그(젠또깡)에 대해서는 무슨 자세한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알고 계신 그대로가 '스베테(全て : 전부)'입니다.

경제에 대한 논쟁 포인트가 한가지 있긴 하나, 그것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냥 쉽게 정리가 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럼 정리해 보겠습니다.

즉 젠또깡이 자기가 집권할 때가 한국경제가 수출도 잘 되었고 가장 안정화되어 있었다고 자랑한 부분입니다.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든 한 시대를 주무른 풍운아였던 젠또깡


"내가 집권할 때가 한국경제가 제일 좋았다"는 젠또깡의 이 강변은 일견 틀리지 않은 말일 수는 있습니다.

"그란데 왜 자꾸 날 핍박햐? 왜 나만 갖고 그랴?" 젠또깡의 이 항변에 동조를 해주는 듯한 이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잘 보세요. 젠토깡 때 한국경제가 좋았던 것은 박정희가 깔아둔 결과가 마침 그 때(젠또깡 때)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중화학공업을 육성했던 박정희


중화학공업이나 수출산업이나 방위산업 등에 투자한 결과가 나오는 시기는 빠르면 5~6년, 늦으면 10년 정도가 걸립니다.

그러니까 박정희 때 계획하고 설계하고 투자했던 그 산업의 열매가 잘 맺어졌던 시기가, 바로 젠또캉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걸 가지고 마치 자기(젠토깡)가 잘해서 그리 되었다고 '오오게사니(大げさに : 넉살좋게)' 말하는 것은, 장부가 할 짓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1931년생으로서 향년 90세로 세상을 뜬 젠또깡의 명복을 빕니다. 젠토깡의 자기 꼬붕들에 대한 '으리(義理)' 만큼은 소홀한 것이 아니었다는 평(評)도 있습니다.

(사족) 사실 필자에 있어서는, 젠또깡에 대한 논쟁포인트를 정치사회학적 측면에서 1~2개 정도를 더 제시해 보고 싶지만, 이는 다음 기회로 넘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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